1994년에서 온 편지 “냉담과 무력을 끊고”

지넷 윈터슨은 좀 특이한 작가다. 레즈비언이라는 성정체성이 많이 부각되긴 하지만 그에 앞서 글을 잘쓰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통해 구시대적 수사학을 익히고 남을 설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다는 그. 입양된 집에서 끝내 가출을 하고 명문대에서 수학하며 명망있는 작가가 되는 그.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 중 자신만큼 풍부하게 언어를 다루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며 “겸손을 모른다는 평을 듣는” 그. 삶과 언어에 대한 지적인 통찰과 위트로 가득한 지넷 윈터슨의 1994년의 인터뷰. (엑스북스에서 2017년 출간 예정)

winterson

“스스로를 풀어줄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런 과정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삶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넣을 수 있는지, 한 작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넣을 수 있는지 보고 싶어요. 중요한 건 감정입니다. 저에게는 감정을 제한하는 것이 위험하고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이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닫혀 있던 감정 영역을 탐험하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면에 매혹됩니다. 하지만 언어에 대해서 말하자면, 제가 언어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무슨 자격으로 여기에 앉아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어요? 무슨 자격으로 글을 쓰겠어요? 그건 단순한 직업 이상입니다. 삶이고, 소명이고, 저에게는 모든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제 자신을 충족시켜야 하고, 또 제 스스로를 충족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최고의 작품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소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윈터슨. 우리의 삶, 그 삶을 채우는 감정.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 지넷 윈터슨에게 삶과 예술은 결국 같은 말이다. 예술이 갖는 힘, 작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그는 이런 말을 하는데…

 “음… 우리는 사회의 붕괴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사회가 무너지고 있고, 우리가 싸우지 않는 한 반드시 붕괴될 거예요. 그러면 반동과 돈과 권력의 힘이 모든 것을 차지하겠죠. 저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예술이 사람들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이렇게 말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이런 걸 좇을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된다고요. 예술은 일종의 자신감을 줍니다. 우리는 모두 무력함을 느끼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냉담과 무력감을 끊고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지점이 되고 싶어요.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외칠 슬로건을 주고 싶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슬로건을, 언어를 주고 싶다는 말. 예술을 통해 그가 이루고 싶은 건 어떤 고상함이나 고고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에 가까이 개입하는 것이었다. 1994년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래왔고, 바로 지금도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삶이 무너지고 있다.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차지했던 탓이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1994년의 윈터슨이 말을 해주는 듯하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이다. 역사의 비극과 삶의 비참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윈터슨은 계속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그가 말하는 희망, 그것은 어디에서 오냐는 질문에 작가는 대답한다.

“저는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희망적입니다. 또한 억제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도취적이거나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저는 결국 인간의 좋은 면, 고결한 면, 뛰어난 면이 작고 비열하고 부정한 면을 이길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지금 당장 목을 베고 일을 그만두는 게 낫겠죠. 작가는 자신의 언어가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걸 것이라고, 그렇게 말을 걸 가치가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어야 하니까요. 연속성을 믿어야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런 책들이 씌여서, 그런 책이 존재해서, 지금 당신이 그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특히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고결함과 아름다움이 부정과 타락을 이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언어와 사유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면,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사람들이 걸어오는 말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일─언제고 우리는 그 일을 해야만 한다.

 
*”예술과 삶, 문학과 삶” -이만큼 긴박하고 절실한 과제가 있을까? [이야기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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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사회외 어떻게 관계맺는가?”- 작가탐독, [크리에이티브 리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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