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 중의 차사, 강림

저승에는 심판관인 열 명의 대왕, 그러니까 시왕(十王)이 있다. 시왕들 밑으로는 각각 문서를 담당하는 판관들과 죽은 영혼을 데려오는 차사 등이 있다. 열 명의 대왕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는 다섯번 째 지옥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이 부리는 여러 부하들 가운데 또한 유명한 이들은 판관 중의 최고 판관 ‘최판관’과 이승에서 발탁해 온 저승차사 ‘강림’이다.

저승삼차사
– 웹툰 <신과 함께> 속 강림의 모습, 주호민 작.

이승의 강림도령, 저승차사로 전격 발탁

강림은 김치 고을의 말단 공무원 포졸이었다. 담대한 성격에 거침이 없었고 용모 또한 뺴어나 처첩 모두 합하여 열여덟 명을 두었다. 어느 날 김치 고을에 꽃뱀 노릇으로 재물을 빼앗던 과양생이 처가 과거에 급제해 돌아온 세 아들이 한날 한시에 급사했다며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찾아왔다. 김치 원님은 이 황당한 죽음은 염라대왕에게 따져 물을 일이다 하여 당장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아무도 저승에 가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마침 강림이 열여덟번 째 장모 생일 잔치에서 술에 취해 지각을 헀다. 김치 원님은 그 죄를 물어 강림에게 저승에 다녀오라 심부름을 보냈다.
책임감 강한 강림은 출장을 다녀오긴 해야겠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다행히 못생겼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소박을 놓은 강림이 본처가 매우 영리한 여성이었다. 강림이 처는 저승문서도 챙기고 저승길을 알려줄 신들에게 대접할 시루떡까지 마련해 강림이 무사히 저승에 가도록 도왔다.
강림이 우여곡절 끝에 염라국에 들어갔지만 염라대왕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없다. 염라대왕은 어느 집 기둥으로 모습을 감추고 강림을 시험했다. 그러자 담대하고도 거침없는 강림은 주인에게 기둥 수를 물어 확인한 다음 늘어난 기둥 하나를 베려 했다. 그제야 본 모습을 드러낸 염라대왕은 강림과 약속하고 김치 고을로 내려가 문제를 해결했다. 염라대왕은 강림이 맘에 들어 스카우트하려 했다. 그러나 일 잘하는 강림을 김치 원님이 쉽게 내줄리 없었다. 염라대왕은 그럼 반반씩 나눠갖자며 몸과 영혼 중 무엇을 갖겠냐고 물었다. 몸을 갖겠다는 김치 원님의 대답에 염라대왕은 냉큼 강림의 혼을 데리고 저승으로 떠났다. 그 후 강림은 저승의 차사가 되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게 된 까닭

처음에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정해진 수명이 있었다. 남자는 여든, 여자는 일흔이 정해진 수명인데, 그 내용이 적패지에 적혀 있다. 저승차사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신을 찾아가 이승 명부와 저승 명부를 대조한 뒤 맞으면 적패지를 죽은 사람 대문 앞에 붙인 뒤 큰소리로 이름을 세 번 부른다. 그러면 몸에서 혼이 분리된 영혼이 저승차사를 따라나서게 된다.

적베지 - 문무병
– 적패지를 단 강림, ⓒ문무병

그런데 어느 날 까마귀가 적패지를 대신 가져가겠다고 나섰다. (어떤 판본에서는 강림이 낮잠 자는 사이 까마귀가 가져갔다고도 한다.) 까마귀는 잘 가다가 백정이 고기 잡는 걸 보고는 한점 얻어먹겠다고 허둥대다 적패지를 잃어버렸다. 누가 언제 죽는지 모르게 된 까마귀는 아무 집 대문에다 대고 “아이 갈 데 어른 가시오, 어른 갈 데 아이 가시오. 부모 갈 데 자식 가시오, 자식 갈 데 부모 가시오.” 하며 되는 대로 지껄였다. 그 뒤 사람은 태어날 때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 순서가 없게 되었다.

장수의 대명사, 동방삭

사람의 수명이 뒤죽박죽된 이후 제멋대로 수명을 늘린 이가 있다. 바로 동방삭이다.  원로 코미디언 서영춘 씨와 구봉서 씨가 일정한 가락에 단순한 안무를 곁들여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사 동방삭~’을 외던 코미디 속 그 이름, 장수의 대명사 그 동방삭이다.

이 코미디는 일본 만담 ‘주게무(壽限無의 일본식 발음)’에서 따왔다. 일본의 원본은 ‘수한무수한무~’가 물에 빠져 죽는 내용이 아니라, 수한무가 얻어맞아 머리에 혹이 나는 바람에 수한무 엄마가 때린 아이 엄마에게 항의하느라 아들 이름 부르는 사이 혹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는 유쾌한 이야기이다.  아무튼 장수의 대명사 동방삭은 중국 한무제 때 문인이다. 그는 박식하고 해학이 넘치며 말솜씨가 뛰어났다.
보통 사람은 100세를 채 못 사는데 동방삭은 어떻게 삼천갑자(60갑자×3000=180,000년)를 살게 되었을까? 중국에는 모든 신선들을 감독하는 여신 서왕모가 있다. 서왕모에게는 3000년에 한 번 열린다는 신성한 복숭아가 있다. 그 복숭아를 먹으면 1000살(또는 그 이상인 1000갑자)을 더 산다고 하는데, 동방삭은 이 복숭아를 세 개나 훔쳐 먹었다는 것이다.

김홍도 - 낭원투도(간송미술관)
– 김홍도 <낭원투도>, 간송미술관 소장. 동방삭이 천상의 복숭아를 훔쳐 작품 주인에게 바치는 내용으로, 오래 살라는 기원을 담았다.

동방삭, 저승 명부를 조작해 수명을 늘리다

중국의 역사인물이자 신선으로 알려진 동방삭이 우리나라 저승설화에도 등장한다. 동방삭은 까마귀 사건 탓인지 적패지에 적힌 수명이 삼십(三十)세였다, 서른 나이에 저승에 끌려간 동방삭은 문서 담당자인 최판관 몰래 점 하나를 찍어 자신의 명부를 삼천(三千)세로 고쳤다.
염라대왕은 애꿎게도 저승사자에게 너무 일찍 잡아왔노라 야단치고는 동방삭을 돌려보냈다. 뒤늦게 명부가 조작된 걸 알아챈 염라대왕은 저승차사에게 당장 동방삭을 잡아오라 명령했지만, 꾀 많은 동방삭은 요리조리 숨어버려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저승사자, 마침내 동방삭을 검거하다

동방삭을 놓친 지 삼천 년이 다 되어갈 무렵, 염라대왕이 이승에서 스카우트한 강림이 미제사건을 해결하겠노라 나섰다. 강림은 숯 한 가마니를 산 다음 냇가에서 일일이 씻었다. 강림이 숯 한 가마니를 다 씻을 때쯤 동방삭이 나타나 그 모습을 보고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거 뭐하는 거요?”
“보시다시피 숯을 닦고 있소. 하도 새카맣게 그을려 하얗게 닦는 거요.”
동방삭은 하도 기가 막혀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이런 정신나간 놈을 봤나. 내 삼천 년 넘게 살았어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네.”
정신나간 사람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강림이 재빨리 동방삭을 체포했다.
“잡았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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