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감각

가족만큼 비슷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다 닮아서 신기하다… 싶으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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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갈 자 없는 이상한 가족의 끝판왕! 국내에는 ‘못말리는 패밀리’라는 제목으로 나왔던가…=_=??

함께 살았던 시간만큼, 그 비슷한 시간 동안 떨어져 살기도 한 가족들을 보는 일은 짜증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 어떤 걸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태연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일을 반복하는 그들을 보면서 고개를 젓지만 어느 순간 나 역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나는 식구들이랑은 달라’라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판박이인 것을 실감한다. 오늘도 나는 “그..그래도 난 달라!”를 외치며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도대체 다른 식구들이 ‘쟨 도대체 저기서 뭐하는 거냐’라는 일을 하지만 아마 저녁이 되면 엄마와 다이소를 가겠지….

혼자 살 때는 하지 않는 일들, 사지 않는 것들, 가지 않는 곳들을 가족과 함께 하고 사고 간다. 이것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침에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은 엄마의 아침드라마 소리로 방해받고, 또 천천히 커피를 내려 먹던 시간은 엄마의 아침준비와 겹쳐 소란하고 부산스럽다. 식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혼자서 내가 원하는 책과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 내가 오로지 내 리듬으로, 내 의지로 내 일상을 꾸려가길 원한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라면 내 고유의 리듬은 망가진다. 친척 누구를 만나야 하고, 무엇을 전달해 주어야 하고, 식사 시간을 가져야 하고, 장을 봐야 하고, 마중을 나가야 하고… 이런 일들은 짜증을 냈다가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 없이 진행되는 법이 없다. 늘 속으로 으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한번 지른 후에 몸을 움직이게 된다.

리듬이 망가졌다고 썼지만 사실 표현이 잘못되었다. 내 리듬에 다른 리듬이 들어왔다. 아직은 불협화음이지만 곧 앙상블을 이룰 날이 오겠지. (과연?) 알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들과의 조화로운 삶이라니.. 그런 게 가능이나 하던가?
여튼 이 불편한 동거는 내게 어찌 보면 좋은 기회가 된다. 혼자 있을 때는 실감하지 못하는 어떤 감각들을 훔쳐보기 때문이다. 집에 놀러오신 큰어머니는 화장실에 둔 디퓨저 병에 칫솔을 꽂아두셨는데, 이것을 보고 나는 짜증이 나기보다는 너무나 신선해서 이 장면을 꼭 기록해 두어야지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 집에 가면 필수품처럼 있는 향초와 디퓨저가 생소한 어르신들은 (우리 엄마는 디퓨저를 가리키며 ‘그거 국물 있는 거~’라고 하시고…) 뭔가 병이 있으니 꽂았을 뿐이고…ㅎㅎ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오는 조리법을 메모지에 펜으로 적는 모습도 생경하고, 은행나무 잎이 바퀴벌레 제거에 좋다며 정말 대로에서 차를 멈추고 은행나무 가지를 왕창 꺾는 엄마를 보면서 우리엄마 나뭇꾼인가 싶었고, 저러다 경찰에 잡혀가는 거 아닌가 싶었고(마침 정부청사 앞이었어서), 누가 도시에서 저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 하지… 하며 문득 존경스러운 맘까지 드는 것이었다. 프레스기로 커피를 만들고 난 후 남은 커피찌꺼기가 너무 많고 아깝다며 한번 더 커피를 내리면 안 되겠느냐는 억척스러움은 아줌마 특유의 것이겠으나, 나로서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점이라 또한 신선했다. 하여튼 하나하나 다 적을 수 없지만 혼자 생활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다른, 타인의 일상의 감각을 보고 있자니 이런 관찰이 누군가에게는 글감이 되겠구나 싶었다(바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처럼).

결국 글을 쓴다는 건 감정을 적고 행위를 적고 사건을 적고 느낌을 적는 것일 텐데, 혼자 편안한 ‘comfort zone’에 있을 때보다 그 안전지대를 빠져나왔을 때 쓸 거리들이 생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멈춰서게 하는 것들, 돌아보게 하는 것들, 짜증나게 하는 것들, 웃게 하는 것들, 걱정하게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곧 우리의 글이 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내게 익숙한 범주를 벗어났을 때 더 쉽게 찾아진다. 어쩜 많은 이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보이는 것을 새롭게 보고, 들리는 것을 새롭게 듣고, 감각되는 것을 새롭게 감각하는 일. 이것은 그 상황들을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상황의 관찰자가 되고 기록자가 되면 그 ‘인식’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실수가, 누군가의 버릇이, 누군가의 착각이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고) 고마운 선물이 된다. 재미있네, 신선하네, 남다르네… 이렇게 인식하면서 우리는 이 선물들을 글로 기록하고 남에게 이야기도 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경험을 하고, 경험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경험만 있다면, 우리 모두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심윤경 작가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3주의 글쓰기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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