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4.0 VS 출판1.0

알파고는 놀라웠다

4승 1패. 인공지능 알파고가 우연성과 직관이 힘을 발휘하는 바둑에서 인간 최고수를 상대로 거둔 전적이다. 이번 대결을 통해 우리는 웹4.0 세계의 도래를 예감했다. 웹2.0이 처음 얘기되던 게 10년 전인데, 벌써 4.0이다. 하지만 출판은 구텐베르크 이래로 아직도 1.0이다.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정도의 것은 없었다. 개방・공유・참여의 웹2.0 정신은 이제 소비자에게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도 출판은 지금이나 이삼십 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책을 생산・유통하고 있다.

웹의 진화는 출판과 별개인가. 웹은 미디어를 소비하는 대중의 감각을 바꾸어 놓는다. 출판이 웹과 나란히 2.0, 3.0, 4.0으로 진화해 가야 하는 이유다. 출판은 그동안 독자와 활동을 공유하지도, 개방적이지도,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지도 않았다. 출판은 웹2.0시대에 지나치게 자신의 고유성만을 강조함으로써 대중과 점점 유리되는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제 출판은 변방의 미디어다.

반전의 시작은 출판2.0부터다. 사용자 참여를 끌어내고 공유하고 개방하기 위해서는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용자제작 콘텐츠’(UGC)가 생성될 수 있는 구조로 출판의 사업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는 그런 문제의식하에서, 웹2.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만든 공간이다. 엑스플렉스의 모든 강좌나 프로그램들은 글쓰기와 책쓰기를 지향한다. 사용자제작 콘텐츠 즉 독자가 직접 생성해낸 콘텐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지금은 주로 글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점차 사진, 그림, 영상, 프리젠테이션, 음악 등의 표현 영역 일반으로 확장해 나갈 생각이다. 그것이 출판의 자산을 진정으로 개방하고 공유하는, 웹2.0시대에 부합하는 출판의 태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웰컴투 텐북스

그동안 출판사들은 독자들에게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다. 저자(author)의 저작(author)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권위(authority)의 산물이어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미디어 환경과 인쇄기술의 변화는 출판사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저자란 무엇인가? 독자는 저자가 될 수 없는가? 출판사에 투고의 형태로 들어오는 그 수많은 ‘저자-되기’의 욕망을 왜 출판사들은 외면하는 것일까. 임프린트도 많이 만들고, 출판브랜드도 많이 만들면서 왜 독자를 저자로 만들어주는 브랜드는 만들지 않는 걸까?

엑스플렉스 프로그램 중에 ‘텐북스’ (ten-books)라는 게 있다. 독자가 평소에 쓴 글들(개인미디어인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써놓은 글들 포함)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1:1 코칭 과정이다. 과정을 이수하면 POD로 책 10부를 만들어 갖게 되는데, 그래서 텐북스라고 이름붙인 건 아니다.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X-PLEX)는 “미지수 x의 모험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누구도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성의 크기가 얼만지 잘 모른다. 그 가능성과 잠재성이 폭발하면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믿는다. 미지수 x는 그 가늠하기 어렵고 측량하기 어려운 잠재성을 가리킨다. x는 또 로마숫자로서 10을 뜻한다. 따라서 텐북스는 “미지수 x의 책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써놓은 자기 글이 있으면 누구나 텐북스 과정을 통해 책을 낼 수 있다. 원고 분류하는 법에서부터 제목 짓는 법, 맞춤법과 교정보는 법, 표지 꾸미는 법 등을 전문편집자와 전문디자이너가 1:1로 피드백 해주면서 한 권의 책을 완성‧출간하는 과정으로 설계되어 있다. 수업시간도 협의해서 조정할 수 있다. 책이 출간되면 인터넷서점 교보와 알라딘에서 유통 판매된다.

이런 일을 출판사들보다 잘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런 과정을 운영하는 출판사는 별로 없지만, 출판업이 서비스업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독자가 책을 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콘텐츠 세계에서 독자의 능동성은 한껏 고양되고, UGC의 세계는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


개인화마케팅과 셀프퍼블리싱

소셜미디어 시대에 대중의 분포 양상은 점점 다중(多衆)의 양상을 띠어 간다. 말 그대로 입장과 코드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무수히 잘게 수많은[多] 집단[衆]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보면 세그멘테이션의 크기는 일정 규모 이하로 작아질 수 없다. 너무 작아지면 비용 대비 수익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세분화 전술은 이제 세그멘테이션의 크기 쪽을 잘게 나누는 방향이 아니라 특정 세분시장 내에서 안으로 좁혀 들어가면서 고객 개개인을 정밀하게 타겟팅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개인화마케팅 혹은 미시마케팅의 등장이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의 이런 미시마케팅의 트렌드 속에서 저자의 출현 양상 또한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통로를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셀프퍼블리싱의 등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저자-되기’ 욕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저자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한 권의 책을 받아든 신생 ‘독자-저자’는 기쁨으로 행복할 것이고, 출판사는 의미・보람과 함께 새로운 수익의 원천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객감동이 반복적으로 창출되면 자연스럽게 고객관계가 구축된다. 이것이 바로 마케팅에서 말하는 하이터치 마케팅(경험 마케팅)이고, 고객관계관리(CRM)다. 쿠폰 주고, 경품 주고, 반값 할인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고객감동은 창출되지 않는다. 독자의 글을 쓰고 싶은 열망과 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자극하고 격려하고 도와줌으로써 저자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유용한 도움을 주는 것, 출판이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고 감동일 것이다.

독자의 욕망읽기, 스몰빅데이터

웹3.0은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로 대표된다. 출판사들은 출판2.0과 함께 출판3.0으로도 진화해야 한다. 물론 출판사들도 이제는 RFID를 시도하기도 하고, 종이책의 플랫폼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웹상에 책 콘텐츠가 흘러다닐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웹3.0의 핵심은 이런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고객의 욕구를 정밀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바로 빅데이터다.

빅데이터가 위력적인 건 인간 욕망의 진수인 무의식적 욕망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에서 상품을 배치 진열할 때는 소비자 동선을 고려하게 마련인데, 기저귀 옆에 맥주를 놓아둔 것도 빅데이터가 가르쳐준 것이다. 금요일 저녁, 주말을 맞아서 이제 막 애를 낳은 젊은 엄마 아빠가 장보러들 많이 나오는데, 이때 아빠들이 기저귀도 사고, 또 주말이니까 집에서 가볍게 마실 맥주도 사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후 기저귀 옆에 맥주를 진열했더니 맥주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가 무의식적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빛나는 기술이긴 해도, 그 데이터를 확보하고 해석하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빅데이터는 크기, 다양성, 속도 등을 요구하는 데이터다. 페타바이트(PB) 규모로 확장된 데이터 양이 필요하고,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즈니스에 이용해야 하므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 즉 수집・가공・분석하는 데 있어 일정 이상의 속도를 요구한다.

데이터 관점에서 정의한 위의 빅데이터 정의를 기업 관점에서 재정의해보면 “가치를 생성해내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의 경우 데이터 관점의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규모상 불가능하지만, “가치를 생성해내는 데이터” 관점에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출판에 최적화된 이런 빅데이터를 ‘스몰빅데이터’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것이다.

스몰빅데이터는 양적으로 반드시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세그멘테이션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집단의 크기면 충분히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출판에서 요구하는 빅데이터의 크기는 얼마일까. 다품종소량의 출판에서 사업의 원활한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판매부수가 2천부~3천부라고 할 때 10만명 정도의 데이터면 빅데이터에 값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타겟팅하고 있는 세그멘테이션이 있느냐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자신의 세그멘테이션에 속하는 독자들의 동선이나 욕망을 읽어내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냥 책 내고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출판은 과학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기대에 근거한 ‘감의 출판’을 해왔다면, 그것이 효용을 다한 지금부터는 데이터에 근거한 ‘과학의 출판’을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마케팅의 이론과 웹 2.0, 3.0의 기술들이 출판을 예측 가능한 사업으로 할 수 있는 툴들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출판은 출판2.0, 출판3.0으로 진화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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