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울음을 이긴다

지난 금요일,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웃음의 대학」을 관람했습니다. 일본의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입니다. 쇼와 15년(1940년), 그러니까 2차대전 발발로 전시동원령이 발동되고 사상통제와 검열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때가 배경입니다.

극단 ‘웃음의 대학’의 연출가 겸 시나리오 작가인 츠바키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희극작품을 써서 검열을 신청합니다. 사상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검열관 사키사카는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웃음의 ‘웃’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열 번 찍어 넘어뜨리려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계속 고쳐 쓰게 합니다. 츠바키는 굴하지 않고 매번 밤을 새워 다시 써옵니다. 검열에 맞서 싸우지도, 수정 요구를 거부하지도, 쌩까고 연극을 강행해 상연중지를 당하지도 않고 고분고분 계속 극본을 고쳐쓰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수군댑니다. 기회주의자, 장사꾼, 권력의 앞잡이라고 말이죠. 츠바키도 이를 잘 압니다. 검열관이 결국 묻습니다. 말도 안되는 요구를 받아들여 계속 다시 쓰는 이유가 뭐냐고.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수군대는 걸 아느냐고. 츠바키가 말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투를 합니다. 저는 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투를 합니다. 저는 제가 만든 연극을 보고 사람들이 웃기를 바랍니다. 검열관의 요구를 받고 고치면 고칠수록 내용이 점점 더 재밌어집니다. 그게 제가 계속 대본을 고쳐 쓰는 이유입니다.”

반복되는 수정 과정에서 웃음의 강력한 전염력은 사키사카와 츠바키 두 사람을 모두 바꿔놓습니다. 검열관을 웃음의 ‘웃’자를 아는 사람으로 바꿔놓았고, 검열관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츠바키 또한 자신의 웃음을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둘은 최종수정본을 놓고 즐거워합니다. 이제 무대에 올릴 일만 남은 듯합니다. 그러다 문득 현실로 돌아온 검열관. 다시 한번 말도 안 되는 수정을 요구합니다. 츠바키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손에는 입영통지서가 들려 있습니다. 혹시 전장에서 자기가 죽으면 대신 연극을 무대에 올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츠바키는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때 검열관이 소리칩니다. 죽지 말고 꼭 살아돌아오라고, 돌아와서 당신 손으로 이 연극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고, 이 연극은 너무 웃겨서 반드시 상연되어야 한다고!

웃음은 힘이 셉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검열관마저도 바꿔놓습니다. 심각과 진지는 결코 웃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무게와 깊이는 다릅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깊은 것은 웃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한 말 중에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라는 말도 있지만, 쉬운 것이 깊고, 유쾌한 것이 깊습니다. 기존의 가치를 가볍게 비웃어주고 전복하는 건 울음이 아니라 웃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치의 전환입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라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정의 방식이 아니라 긍정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해야 합니다. 슬플 때 슬퍼하는 건 차라리 쉽습니다. 가장 슬플 때조차 그 속에서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찾아내서 기뻐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능력이고, 그 능력이 나를 바꾸고 나의 삶을 바꿉니다. 생활이 우리를 속이고 힘들게 할지라도 웃음으로 울음을 이기는 한해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었던 하루보다, 웃지 않고 보낸 하루가 더 쓸데없이 아깝게 보낸 하루라는 것…!
(텔레비전 앞에서 마라톤하신 분께 부디 위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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