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에 기본공급률을 권함

도서정가제를 위한 변명

도서정가제란 가격결정권을 유통업자가 아닌 생산자가 갖는 제도다. 생산자가 정한 가격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인율도 일정 범위 내로 제한한다. 그것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자는 게 목적이다.

도서정가제는 어떻게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하는가. 유통업자가 가격결정권을 갖게 되면(즉 정가제가 아니라 오픈가격제가 시행되면), 서점은 독자들을 자기네 서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할인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서점이 부르는 게 책값이 되고, 출판사는 생존을 위해 서점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가격경쟁력이 없는 생산자는 죽어날 수밖에 없다. 생산자는 그렇더라도 소비자는 낮은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어 이익을 보지 않겠는가. 고객의 이익을 외면하는 출판사나 서점은 도태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도서정가제가 경쟁력이 없는 출판사나 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도서정가제가 아닌 오픈가격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경쟁적인 가격할인으로 소비자가 싼값에 책을 살 수 있다고 치자. 소비자는 이익을 얻을까, 손해를 볼까.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싼 책값에 익숙해지면 그렇지 않은 책은 독자 눈에 모두 비싸 보인다. 조금이라도 비싸면 책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고 불신하게 된다. 이런 시장환경에서 소량으로 판매되는 책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시장에는 박리다매의 셀러 상품만이 넘치게 되고, 출판물의 다양성은 크게 훼손됨으로써 독자들은 결국 가치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소비자 이익은 가치와 가격,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 이익은 가치와 가격의 절묘한 콤비네이션의 결과다. 가치가 크면 클수록 같은 가격이라도 덜 비싸게 여기며, 가치가 작으면 작을수록 같은 가격이라도 더 비싸게 여기는 것이 사람 심리다. 가격할인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나에게 의미도 재미도 없는 책은 아무리 싸도 싼 게 아니다. 책은 사람마다 가치관, 신념, 재미, 감동의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책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책이 다품종소량생산의 상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고, 세상에 책이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 이유다. 실제로 1년에 새로 출시되는 단행본만 하더라도 2만종 가까이나 된다.

볼 수 있고 봐야 할 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의 정신생활이 풍요로워진다는 걸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가격 못지않게 책의 다양성으로부터도 커다란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출판유통망이 가격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가격경쟁력이 없는 책은 서점이 주도하는 유통망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고, 이는 독자 입맛이 아니라 서점 입맛에 맞는 책만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은 가격경쟁력이 있는(즉 시장에서 팔릴 만한) 소수의 품종만이 생산 유통되는 소품종대량생산이 지배하게 되면서, 다양성의 가치는 훼손되고 이는 결국 소비자 손해로 귀결된다.


볼 수 있고 봐야 할 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의 정신생활이 풍요로워진다는 걸 의미한다.”

박강수 공연을 보고 세 번 놀라다

경제의 지속성장에는 한계가 있지만 감성과 지성의 지속성장에는 한계가 없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콘텐츠가 너무 많은 경우는 없다. 콘텐츠의 세계는 말 그대로 다다익선의 세계다. 생산자가 아무리 많아지고 소비자가 아무리 많아져도, 콘텐츠가 수천만 개가 되어도 그 세계는 과잉을 모르는 세계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수준과 상태에 따라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염려해야 할 것은 과소지 과잉이 아니다. 과소와 과잉을 나누는 기준은 절대량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아무리 많아도 내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면 그 세계는 과소의 세계다. 유통업자 마음에 드는 것만 보이고 들리면 과소의 세계가 되기 쉽다.

2월 26일, 홍대 주차장거리 부근에 있는 베짱이홀에서 포크가수 박강수의 공연을 보았다. 그날 나는 세 번 놀랐다. 첫째, 2001년에 데뷔해서 7집까지 음반을 낸 관록있는 가수를 그날 처음 알게 됐다는 사실. 둘째, 그런데 그 가수가 노래를 너무 잘한다는 사실(아, 콘텐츠의 세계는 얼마나 넓은가. 그리고 나의 음악 세계는 또 얼마나 좁은가. 그의 노래 실력은 이름만큼이나 강력하고[强] 빼어났다[秀]. 검색을 해봐도 ‘강수’씨의 한자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노래를 파워풀하게 너무 잘해서 갖다붙여 보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7집을 내는 동안 누적 음반판매량이 1만장이라면서 이제 1단계 목표인 1만매니아는 달성했으니까, 2단계로 10만매니아를 향해 가겠다는 야심찬 포부의 ‘매니아론’을 이야기할 때 또 한번 놀랐다. 내가 엑스플렉스라는 출판문화공간을 열면서 10만명의 팬덤과 ‘퍼블릭 릴레이션'(PR)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생각한 것과 발상이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강수씨는 베짱이홀이라는 소극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관객을 정기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공간을 아예 임대한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자기 공연을 하고, 나머지는 대관을 통해 공간 운영비를 마련한다. 공연유통업자에게 휘둘리면 자기 개성과 전문성을 살리는 다품종소량의 공연을 힘있게 밀고 나가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독자적으로 공연 공간을 마련했을 것이다.


패션의 완성은 양말, 도서정가제의 완성은 공급률

출판사는 서점에 정가의 6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공급률로 책을 공급한다. 1만원짜리 책이라면 6,000원에 서점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 공급률은 출판사와 서점 간에 맺는 개별기업들 간의 협약 사항이긴 하다. 그러나 도서정가제의 취지가 살려면 공급률의 하한선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공급률 결정권이 유통업자 손에 넘어가면(이 경우 가격결정을 출판사가 하더라도 그것은 무늬만의 가격결정권에 그치기 십상이고, 실제로는 공급률 결정권을 쥔 서점이 가격결정권을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은 훼손되고, 그러면 도서정가제는 유명무실해진다.

지금의 출판환경에서 독자들에게 가격은 정가에서 보통 10~15% 할인된 금액을 의미하고, 출판사에게 가격은 정가의 60% 금액을 의미한다. 지금 책의 평균 판매량은 2천부가 채 되지 않는다. 이 판매량을 갖고 출판사가 손익분기를 맞추려면 정가를 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소비자 부담이 높아진다. 공급률을 5~10퍼센트 정도 올리면(정가의 70%선으로 끌어올리면), 그만큼 정가를 낮추는 요인이 발생해 소비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지금의 출판환경에서 여러 이익집단과 소비자를 고려할 때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적정 공급률은 70% 정도라고 본다.

한국출판인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최근 공급률 문제를 둘러싸고 예스24와 주고받은 내용이 게시되어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2016년 2월 2일, 온라인서점 예스24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생출판사들, 그리고 현저히 낮아진 할인율 관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책 출판사들의 도서공급률을 5%P 이상 인상해 줄 것, 그리고 일반 단행본의 경우 통상매절공급률을 65%로 유지해 줄 것, 그리고 상생공급률 논의를 희망하는 출판사들에 대해 거래중단으로 대응하지 말고 성실하게 협의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권고문을 보냈다.

이에 예스24는 “당사는 출판사와의 공급률을 업계 평균수준으로 계약하고 있으며, 출판사들의 출고 정지를 받은 적은 있으나 당사가 먼저 거래중단을 한 적은 없다는 점, 출판인회의에서 권고한 공급률 조정 문제는 개별기업 간에 자율적으로 맺는 사적 계약의 영역이고, 당사는 계약기간이 도래하는 출판사들이 요청할 경우에는 거래조건이나 매출확대 방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해 나가겠다”는 김기호 대표이사 명의의 답신을 보내왔다.

예스24 대표이사의 “공급률을 업계 평균수준으로 계약하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평균수준이 너무 낮아서 출판인회의가 권고문을 보낸 것인데, 모르고서 한 말이라면 서점 대표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것이고, 알고서 한 말이라면 출판계를 무시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또 “출판사들의 출고정지를 받은 적은 있으나 당사가 먼저 거래중단을 한 적은 없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업계에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칼자루를 쥔 예스24가 뭐가 아쉬워서 먼저 거래중단을 하겠는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 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궤변은 계속 이어진다. 공급률은 확실히 “개별기업 간에 자율적으로 맺는 사적 계약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그러나 동시에 출판은, 책은, 사적 기업의 개별행위이기도 하지만, 공적 영역에 속하는 행위이기도 한다. 요컨대 책은 시장재인 동시에 공공재이기도 한 것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비치해 놓고 시민에게 무료로 책을 빌려주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책 말고 어느 사적 기업의 상품을 공공시설에 대량으로 쟁여놓고 무료로 빌려준단 말인가. 또 신문, 책, 잡지 말고 어느 상품이 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가. 법률로 가격결정권을 유통업자인 서점이 아니라 공급자인 출판사에게 주고, 할인을 제한하는 것은 책의 유통과 판매 행위가 단순히 사적 기업의 개별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도래하는 출판사들이 요청할 경우에는 거래조건이나 매출확대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 나가겠다”는 대목도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출판계 짬밥이 좀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계약기간이 도래했다고 계약조건을 변경한 사례가 그동안 한번이라도 있었는지.

공급률 문제는 업체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아니다

책은 시장재이면서 공공재인 독특한 상품이다. 공급률도 이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우선 시장재 관점에서 보자면 공급률은 서점과 개별 출판사 간에 협의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 맞다. 동시에 공공재 관점에서 보자면 일정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나는 공공재적 관점에서의 이 가이드라인을 ‘기본공급률’(basic supply rate)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기본공급률이란 시장참여자라면 무조건 보장받는 공급률이다. 여기가 출발점이다.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할 때 기본공급률은 70%가 적정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출발점만 지켜진다면 나머지는 시장 자율에 맡겨도 좋다고 본다.

일례로 서점 프로모션을 세게 하고 싶다면, 서점 담당자와 협의를 거쳐 공급률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면 된다. 다만, 특별한 프로모션 없이 책을 팔고 싶은 출판사는 기본공급률을 유지하면서 책을 출고하면 된다. 매절도 마찬가지다. 50부 이상, 100부 이상이면 무조건 매절 ○○%가 아니라 프로모션 차원에서 개별 협의를 통해 매절로 공급하고 싶은 출판사만 매절 공급률로 공급하면 된다.

지금의 서점 공간은 너무 좁다. 신간이 출간되어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할 정도로 턱없이 좁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공급률은 경향적으로 저하할 수밖에 없다. 공급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다. 대안 유통경로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전문서점, 출판사 직영서점 들이 많이 생겨야 소수 바잉파워가 있는 대형 서점의 갑을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의 공급률은 소수의 대형서점들이 독자들을 만나는 통로를 독점적으로 지키고 있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제부터라도 출판사들은 자기 독자를 직접 만남으로써 서점의 정보 독점과 연결 독점을 막아야 한다. 그 서점 아니면 안 된다, 그 서점의 대문에 걸리지 않으면 팔 길이 막막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출판을 하는 한, 공급률을 둘러싼 갑과 을의 관계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시 문제는 PR(public relation)이고, 출판(publishing, publication)이다. public은 세분화된 대중 즉 타겟팅된 내 고객(강수씨 표현을 따르면 매니아 혹은 팬덤)을 가리키고, public relation은 그 타겟고객과 관계맺기를 의미한다. 출판을 뜻하는 publishing과 publication도 타겟고객과 관계가 있는 말이다. 책을 만들어 파는 것이 출판을 의미했을 때 그것은 print였다. 그러나 이제 출판은 print가 아니라 publishing이고 publication이다. publishing은 public(타겟고객)과 ishing(=going)의 합성어로, 타겟고객에게로 가는 것을 의미하고, publication은 public과 ‘활동을 함께 만들어나가는’(-ation) 것을 의미한다.


뉴욕 소호에 위치한 독특한 서점, 하우징웍스(Housing Works).
사진은 ‘크리스마스 캐롤(찰스 디킨스) 마라톤’에 참여해 저마다 『크리스마스 캐롤』 일부를 읽고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30명 남짓한 독자들의 모습이다. 책과 작가를 사랑하고 독서경험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이 또한 ‘출판’의 일종이 아닐까.

공급률 문제는 서점과 출판사 간의 이익 배분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이 결코 아니다. 적정 공급률의 확보는 독자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적정 공급률은 책 정가의 인하 요소가 된다. 기본에 못 미치는 낮은 공급률은 어쩔 수 없이 책 가격의 인상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출판사는 적정 공급률이 확보된다면 책값을 인하할 여력이 생기고, 이는 다시 독자 이익을 가져와 더 많은 독자를 출판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이는 서점의 매출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그릴 것이다. 적정공급률은 독자를 살리고, 저자를 살리고, 출판사를 살리고, 서점을 살리는,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끝으로 여담 하나 하자면, 엑스플렉스는 자회사로 엑스북스(xbooks)라는 출판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생긴 지 1년 남짓된 신생출판사인데, 다른 서점은 거래를 텄는데 예스24와는 아직도 거래를 트지 못하고 있다. 공급률 60퍼센트가 아니면 거래를 터줄 수 없다는 것이 예스24의 비공식적이지만 공식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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