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고 난 후, 나는 책을 사고 있었다

어쩌다 아마추어 극단의 연극 리허설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 하나의 온전한 연극을 공연하는 게 아니고 연극의 한 장면만을 10~20분간 발췌(?)해서 보여주는 식이었다. 이것을 지켜보면서 비록 전체 연극이 무슨 내용인지 알지는 못해도 그 장면을 강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어서 나름 강렬한 경험이었다. 여기서 강하게 느끼고 이해한다는 말은 내가 창작자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말과는 좀 다르다. 그 순간, 그 장면에서 배우가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날것으로 바로 전달받는다는 말이다.

배우와 관객이 모두 그 연극의 전체 스토리를 모를 때면 이 관람(혹은 리허설 구경)이 더 재미있어진다. 두 형제의 대화만을 보고서 똑같은 캐릭터를 한 배우는 ‘천성이 폭력적이고 성질 급한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다른 배우는 ‘온순하고 매사에 참다가 어느날 화를 못참고 터뜨리게 되는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사를 들으며 나는 또 다른 버전의 다른 남자를 떠올린다. 캐릭터는 한 명이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같은 인물이 수십 수백 수천 명이 된다. 무언가를 읽는 행위가 읽는 그 사람의 역사 지식 배경 맥락에 따라 다 달라진다는 것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고 나니 ‘읽기’가 정말 적극적인 활동이구나가 실감되었달까.

극장

형제의 대화를 이은 또 다른 신은 모놀로그였다. 여자가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는 짧은 장면이었다. 전체 스토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는 엄마와 전화통화하는 여자의 삶을 나름으로 상상하며 연기를 했다. 괜찮은 대학은 나왔지만, 완전 좋은 대학은 아니어서 고스펙자들에게 밀리고 결국 직장을 잃은 여자가 다른 직장 면접을 보기 전에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여자가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난하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그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지만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이 여자의 독백으로 표현된 전화통화를 듣고서 각각 떠올리는 그 여자의 사연은 다 달랐다는 점이다. 여자는 왜 직장에서 잘렸는지 그 상사는 어떤 성정의 사람이었는지, 지금 여자는 대기실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화장실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상황을 상정하고서 그 배우에게 여러 질문과 피드백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는 화가 났니?”
“음.. 그런 것 같아. 열심히 하던 회사에서 잘렸으니까.”
“그 회사에서 여자는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니? 그렇게 실수 한 번으로 직업을 잃을 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니?”
“음… 일을 잘하긴 했지만, 대체가능한 인력이었나봐.”
“여자는 왜 엄마 탓을 하는 것 같지? 왜 엄마를 위해 그 일을 했다고 말하지?”
“음.. 엄마한테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이렇게 연기를 하는 사람과 연기를 보는 사람이 질문과 답으로 가공의 인물과 그 여자의 스토리를 만들어 갔다. 입에서 나오는 대사는 변함없지만 전화통화하는 이 여자는 이미 이 극본을 쓴 사람의 인물과는 다른 캐릭터가 되어 있을 터다.

이것은 연기이고 연극이지만 그 전에 ‘읽기’가 먼저다. 어떻게 그 캐릭터를 읽어내느냐에 따라 연기가 달라진다. 엄마에게 짜증과 분노를 섞어서 화를 낼 수 있고, 원망은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인정과 사랑을 욕망하는 어린딸의 마음으로 어리광 섞인 화를 낼 수도 있다.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작품을 이해하는 결이 달라지고 작품을 보는 내내, 보고 난 후의 감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신기한 것은, 그 감정은 작품을 만든 사람보다 읽는 사람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을 연극 연습을 보면서 느꼈다. 읽기라는 것이 이렇게 다양하고 적극적일 수 있구나, 하고.

‘읽기’에 대해 읽기라는 활동과 내적 움직임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영문학자 최은주가 『책들의 그림자』에서 내내 하는 이야기가 이것이다. 책이 친구이고, 연인이고, 일상이고, 유희인 자가 하는 말들. 정말 너무나 즐겁고 황홀한데 어떻게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야기해 줘도 알 수 없는 것이 독서의 기쁨이다. 그레고리우스의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책 속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어머니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좋은 글의 마술 같은 힘이나 광채를 이해시킬 수는 없다. 손을 잡고 책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똑같은 사물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낱말들과 결합되는 순간의 경이로움. 독서에서 찾은 생경한 풍경은 독자를 주목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학은 삶의 순간을 포착하고 미미한 것들을 소환해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관념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책들의그림자-입체

책에 대한, 읽기에 대한 저자의 애정 넘치는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책만 읽고 있고 싶어진다.
방금 6권짜리 소설세트를 주문한 참이다. 아마 엄마는 세상에 무슨 책을 또 샀냐며 혀를 차겠지만.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