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생각한다

1. 
<알뜰신잡>이라는 프로가 나왔을 때 가장 의아했던 건 바로 프로그램 제목이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풀네임인 이 프로의 이름에 들어간 ‘쓸데없는’ 부분이 바로 그 이유였는데, 사람들은 ‘쓸데없다’ ‘쓸모없다’는 말을 좀 쉽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예레기’. 예쁜쓰레기라는 이 말은 모양은 예쁜데 쓸모는 없다 제품을 가리키는데 나는 물건이 ‘예쁜’ 걸로 그 쓸모를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때 블랙베리 사용자였던 나에게 사람들이 내 핸드폰을 볼 때마다 “어, 예레기네”라는 말을… 정말 어찌나 많이 했는지,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기 때문에 더 예민한 걸지도 모르지만. 블랙베리는 물론 다른 핸드폰처럼 편리하고 활용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나 나름의 용도에는 잘 맞았고, 무엇보다도 2년을 쓰는 내내 볼 때마다 핸드폰이 너무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그 만족감이 바로 그 핸드폰의 쓸모라 생각했다.
핸드폰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그리고 또 꾸준히 듣고 있는 말 “넌 참~ 쓸데없는 거 좋아해…” 내가 무언가를 살라치면 “너 그걸 어디에 쓸 건데?!”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럼 나는 대답한다. “다 쓸데가 있어.”
내 경험상, 많은 것들이 다 저마다의 쓸모가 있다.

2.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당장 급한 일 아닌 다음에야 사실 다 쓸모없어 보인다.
이거 꾸준히 한다고 뭐가 되기나 되겠어?
어느 세월에 이걸 해?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해?
내 스펙이나 커리어에 필요하지 않은데 이걸 해야 해?

지금 쓸모없어 보여도 무조건 하다보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실제로 쓸모없는 건 없다는 주의인데 그 ‘쓸모’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하느냐는 남들과 다를 수 있겠다. 나는 모든 게 쓸모가 있고, 관건은 그 쓸모를 우리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고시공부를 하고 시험에 붙지 못했다고 해서 10년은 온전히 무용한 시간만은 아니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남들이 ‘헛되이’ 보냈다고 하지만 결코 헛되이 보냈을 리 없는 그 10년의 시간에서 쓸모를 찾는 것이 우리 삶을 구원한다.

쓸모
3. 
10 년 전 처음 편집자가 되었을 때 “넌 정말 콘텐츠가 많구나!”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처음 몇번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에이 그게 무슨 말이시냐고 손을 내저었지만 계속 듣다 보니 어 정말 그런가?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되었던 일을. 몰래 숨어 보고, 봤는데 안 봤다고 거짓말 하며 보낸 나의 영화, 드라마, 만화 감상의 시간들에서 가치와 용도를 보아주셨던 분은 지금의 엑스플렉스 대표님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 잉여의 시간들에서 쓸모를 발견했던 것 같다. ‘아, 이렇게 쓸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사후적으로 발견해서 적용해 나가는 이런 ‘쓸모’에서 나는 문득 자유를 느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는 하나, 나는 어쩐지 선형적인(linear) 시간에서 자유로워져 나의 지난 시간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4. 
그렇다면 어떻게 쓸모를 발견할 것인가? 어떤 가치와 용도를 보는 일은 낙관하고 상상하고 마음이 열려 있을 때 가능하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비관론자는 대체로 옳고, 낙관론자는 대체로 틀리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대한 변화는 낙관론자가 이룬다.”라고 하는 뉴욕타임스의 토마스 프리드만이 했다는 말을 보고, 좀 뻔하지만 기분이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될 거야” “잘 될 거야” “그건 좋은 거야” “완전 성공할 것 같은데?” 이런 말들은 대체로 틀리다. 우리 삶에서는 잘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하지만 “이거 되겠는데?” 하고 믿어주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실패와 찌질함과 굴욕의 시간은 사후적으로 얼마든지 다시 쓰일 수 있으며, 이런 사후의 작업들을 통해 우리의 무용한 듯 보였던 시간과 일들은 문득, 그게 없었더라면 결코 안 됐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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