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이유

성격이 좋아서는 아닌데, 싸우는 걸 싫어한다. 남자친구들과의 싸움에서도 들이받고(?) 싸우기보다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말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해서 오히려 싸우는 것보다 분통을 더 터지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건 뭔가 전략적인 결정이었다기보다는 언성을 높이고 드잡이를 하는 걸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 천성이 곱고 상냥하고 그런 사람은 또 아닌데 서로 언성높여 싸우다 보면 내가 그 상황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 사실 그 상황과 상관없는 예전에 있었던 일을 끌어들여 문제를 키우기 때문에 나는 싸움이 불편하다. ‘예전에 나한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때 그러지 않았느냐’… 이렇게 예전의 사건들로의 추억여행을 떠나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으로, 정신을 놓고, 상대에 대한 모든 분노와 원한을 끌어모아 퍼붓는 일이어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므로, 나는 이것이 두려워 가능하면 싸움을 피하는 편이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감정에 관한 사전: 1000가지 감정』에서 “나는 이야기하고자 하나 그가 입을 꾹 다물어 버릴 때 치솟는 분노” 항목을 보기 전까지 상대와 이야기를 안 하고 입을 꾹 다무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화나게 하는 일이구나..를 깨닫고 입을 꾹 다무는 것도 피하는 중이다.)

1000가지감정_입체

지금까지 딱 2번 정도 언성을 높여 싸운 적이 있는데 둘 다 엄마와의 싸움이었다. 가장 편한 사람이고,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서인지 다른 사람과는 싸운 적 없는 내가 엄마와는 다시 안 볼 사이처럼 싸운다. 물론 엄마와 이렇게 싸우다니..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서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이해못하는 엄마와 딸 사이인 까닭에.. 그만.. 죄..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격렬하게 싸우고 나면 나는 뭐랄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엄마 미안..) 내면에 어떤 고요함이 찾아온달까? 내가 의식으로 눌러왔던 것들이 터지고 난 후 내가 한 말을 돌이켜보면서 ‘아.. 내가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복기를 하며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참 엄마한테 퍼부운 내가 못났다…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후련함을 감출 수가 없다. 혼자 사유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표현하고 드러내야 ‘나’의 민낯을 만난다. 어떤 교양과 문명을 벗은 나의 모습을 보고 나면 아직은 공부가, 수련이 부족하다고 금세 반성을 하게 되는 나다.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몸부림 치는 나다.

마음이 휘몰아쳐 상담치료를 받았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상담자(의사)는 뭘 해주는 게 없다. 그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하거나 그가 내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나에게 묻는 말에 나는 무슨 말을 했나? 혹은, 그가 묻지도 않은 것들, 나는 그 말들을 어떻게 왜 했나? 이렇게 자신의 발화를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감정상태를 돌이켜보게 된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했다. 그와의 대화가 무슨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그 상담에서 자신이 스스로 인식도 하지 못하던 말을 하는, 나도 몰랐던 ‘나’가 결국 나를 치유한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결국 나를 보살피는 주체는 나다. 화를 내는 것도 일종의 나를 보살피는 방법이다. 내가 한 짓을 까맣게 잊는 것도 나를 보살피는 방법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는 것도 나를 보살피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일주일 내내 웹툰만 보는 것도 나를 보살피는 방법일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혹은 말하지 않고 있는지를 보고 들으려는 노력, 우리 자신에게 충실하려는 노력. 나는 이렇게 ‘나’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이 좋은 곳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다.

내 마음이 들리니?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도와드립니다. 『1000가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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