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과 여자 화장실

스티븐킹

(사진출처: The Stories Of Craig 영상 캡처)

스티븐 킹이 한 토크쇼에 나와서 아직 끝마치지 못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자화장실에 대한 건데요…”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서 여자화장실이라는 말에 좀 예민해져서 눈을 흘기며(스티븐 킹을 니가 왜..) 유튜브를 보는데 이야기는 이러했다.
한 커플이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갔다. 여자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남자를 두고 화장실에 갔다. 뒤이어 다른 커플 역시 공항에 도착했다. 여자가 또 남자를 두고 화장실에 갔다. 나란히 앉아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들. 그러나 여자 둘은 나오지 않는다. 남자 둘은 도대체 여자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한 채 좌불안석 여자를 기다린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하면서…

스티븐 킹은 여자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없어서 도무지 이 이야기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말했다. 이 못다쓴 소설 이야기에서 다른 토픽으로 대화가 바뀌었는데도 진행자는 중간에 말한다. “그런데 그 여자화장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여자들은 여자화장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가 채울 수 없는 이 ‘공백’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한다. 이런 일이 있었을 거야, 저런 일이 있었을 거야. 내가 봤는데~ 내가 들었는데~ 하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탄생하고 변형된다.

나는 이런 순간을 볼 때 작가의, 어떤 작품의 시작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 짜릿하다. 아마 스티븐 킹이 저 단편소설을 완성한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작은 어떤 상황과 사연에 대한 상상과 호기심이다. 실제로 우리는 여자화장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싶을까? 그때 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 남자의 사연을 자세히 알고 싶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궁금한 한편으로,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딱 맞아떨어지는 결론보다는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_이상해

(사진출처: KBS ‘아버지가 이상해’ 방송 캡처)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를 보면서 주변 모두가 그 드라마 정말 이상해!라고 하면서 보고 있는데… 정말로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이상한 아버지는 누구라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 오해받고 비난받기 쉬운 상황의 그를 가족 중 가장 어린 소년은 이렇게 말하며 이해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어요. 잘 모르는 저는 그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또 알고 보면 이해못할 사연이란 것이 어디 있겠어요?” 하는 요지로 말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주제는 주변의 이상한 사람을 이해하자였나…? 아니다, 사실 모든 소설의 주제 역시 그것일지 모른다. 댈러웨이 부인은 왜 그리 파티에 집착하는지, 자베르 형사는 왜 그리 장발장에 집착하는지, 험버트 험버트는 왜 롤리타에 집착하는지… 우리는 기이해 보이는 사람들의 집착과 그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책은 우리에게 여지와 공백을 준다. 이야기는 우리 시간의 빈틈을 채우고, 우리는 역시 이야기의 빈틈을 채운다. 이야기가 있는 이상, 우리의 독서는 무한하다.

책들의그림자-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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