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거주자의 연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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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애담>을 봤다. 그리고 얼마 후에 뉴스자막으로 “수도권 살수록 주거, 양육 부담으로 아이를 안 낳으려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보았는데 영화감독님께는 죄송한 말씀이 될 수 있겠지마는, 나에겐 영화 <연애담>과 이 뉴스기사가 비슷하게 느껴졌더랬다. 레즈비언 영화로서의 유의미함도 있겠지만, 우선 이 <연애담>은 서울에서 자취하며 사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면이 너무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던지라… 반지하와 옥탑을 오가며 단칸방에서 친구와 몸을 구기며 살았던(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을) 수많은 ‘나’, 그리고 수많은 ‘윤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2.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다 잡지 속에 사는 것만 같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가구도 멋스럽고, 침구도 마치 호텔의 그것 같다. 조명은 말할 것도 없고 밥먹는 것도 뭔가 오가닉 레스토랑에서 플레이팅을 해주는 것처럼들 먹더라만. 자취생활 15년이 되어 가도록 모든 밥그릇은 머그컵으로 사용하고 엄마가 싸준 총각김치를 반찬통에 담지도 않고 봉지째 먹는 나의 식탁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요즘 사람들의 세련된 생활방식이 나는 가끔 놀랍다. <연애담> 속 윤주가 이사한 집에서 미대생인 그녀의 방에 두서없이 쌓여 있던 짐과 갈색 소반은 그 정반대의 의미로 놀라웠다. ‘그렇지, 아직 저렇게 사는 사람 있는 거 맞지…?’ 그래, 내 기억이 맞다면 서울살이는 어지간한 사람에게 다 고되다.

연애담스틸

3.
레즈비언 영화라는 타이틀 때문에 <연애담>은 양단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인데, 한편으로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실망,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좋은 거라는 호응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HBO의 드라마 <루킹>을 떠올린다. 온갖 남정네들의 누드와 섹스신도 사람들이 열광한(?)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여기서 이들이 보여주는 친밀감에 감탄했었다. 그들이 침대에서 나누는 이야기, 버스에서, 산책하면서 각자의 사소한 삶의 조각들을 나누는 것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진 드라마이기 때문이다(얘들아, 자고로 연애는 이렇게 하는 거란다…를 보여주는 것 같았달까). 변변찮은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시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그러나 자신의 그런 속물근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반발심. 이것은 비단 퀴어 사회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일어나는 일만도 아닐 것이다. 모태신앙에 기독교 집안인 지수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감추고 선을 보고, 집에까지 온 연인이 책 빌려주러 온 ‘아는 언니’가 되는 것 역시 대한민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닐 것이고.

4.
이성애자로서 <연애담>에 대해 이렇다 보탤 말은 없다. 동성간이건 이성간이건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건 다 똑같다는 일반적 차원의 이야기밖에는 할 게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정이나 행위의 특별함 말고 외부의 상황과 조건이 ‘동성’간의 연애를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우리의 연애는 너희의 연애와 다를 게 없다라는 메시지거나 반대로 우리의 연애는 너희의 연애와 달리 (신경 안 써야 하는 것도 다 신경써야 해서) 힘들다라는 메시지거나, 아니면 다른 뭐가 됐건 “우리의 연애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상 많은 연애 이야기에 다른 결 하나를 보탠다는 것, 이런 양적 추가는 그 어떤 내적 의미, 정치적 의미보다 내게 더 중요한 것으로 느껴진다.

연애담

5.
궂은 알바를 하고, 작업을 하다가 작업실에서 잠이 들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는 편안한 작은 방 한칸 마련하는 건 너무나 힘들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천재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만 부지런히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부지런한 와중에 연애까지 하려니 힘들어 죽겠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데도 연애를 하니까 좋아죽겠다. 내게는 <연애담> 속 윤주가 그렇게 보였다. 더럽고 힘든 일이 많지만 연애를 하며 웃고 또 웃고 마냥 웃는 동안, 운주는 지방 출신 서울 자취자의 빈곤함보다는 연애에 달뜬 자로만 보였다.
지금, 우리가 부지런히 쓰고 있는 우리 각자의 이야기는 연애담일까, 취업분투기일까, 실패기일까, 성공기일까. 그게 무엇이 됐든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뭐든 하게 만든 사실이 문득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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