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질서를 잡은 대별왕과 소별왕

나라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뽑느라 한동안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는커녕 어지럽힌 지도자로 인해 치른 비용과 상처가 큰 만큼 어서 질서가 잡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고 먹고사는 데 고민이 없으며, 일자리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는 완전한 사회는 어쩌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못 볼 수도 있겠다.
우리 옛 조상들 생각이 그러했다. ‘천지왕본풀이’를 보면 인간세상이 혼란스럽고 범죄가 사라지지 않게 된 까닭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능력을 없는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 찾기와 아들로서 인정받기

대별왕과 소별왕이 아버지 천지왕을 찾아간 뒤 처음 한 일은 인간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하늘에는 해가 둘이요 달이 둘이었다. 햇빛에 사람이 말라죽고 달빛에 사람이 얼어죽게 생기자 대별왕과 소별왕은 천근들이 쌀을 먹고 백근들이 활을 들었다,
대별왕이 앞에 오는 해를 두고 뒤에 오는 해를 쏘니 하나가 동해 바다에 떨어진 뒤 산산히 흩어져 북쪽 하늘의 별들이 되었다. 소별왕이 앞에 오는 달을 두고 뒤에 오는 달을 쏘니 하나가 서해 바다에 떨어진 뒤 산산히 흩어져 남쪽 하늘의 별들이 되었다.

인간세상이 드디어 해와 달 하나씩이 되어 살 만해졌다. 인간세상은 인간에게 맡기기로 한 천지왕은 두 아들에게 이승과 저승을 맡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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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별왕 소별왕 |이유정 | 21세기북스

이승과 저승을 누가 다스릴 것인가

천지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인간세상의 이승을 맡기고, 아우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맡기려 했다. 하지만 소별왕 또한 이승을 차지하고 싶어 내기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소별왕이 대별왕에게 수수께끼를 내었다.
“설운 형님, 어떤 나무는 춘하추동 지나도 잎이 안 떨어지고, 어떤 나무는 잎이 떨어집니까? 춘하추동 사계절에 잎이 번성하는 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대별왕이 말했다.
“속이 빈 나무는 잎이 떨어지고 속이 여문 나무는 잎이 안 떨어지니 춘하추동 사계절에 잎이 번성하단다.”
“그럼 왜 왕대 죽대 같은 대나무는 속이 비어도 사계절 잎이 안 떨어지고 새 잎이 납니까?”
“왕대 죽대 같은 대나무는 속이 비어도 마디마디 여물어지니 잎이 안 떨어진단다.”
소별왕이 다시 수수께끼를 내었다.
“설운 형님, 왜 동산 위 풀은 잘 자라지 못해 짧고 산 아래 풀은 잘 자라 깁니까?”
“큰비가 내릴 때 동산 위 풀은 물이 씻겨 내려가 잘 자라지 못해 짧고, 산 아래 풀은 물이 내려와 잘 자라니 긴 것이다.”
“그럼 왜 사람은 허리 위 머리털이 길고 발등 털은 짧은가요?”
“삼신할망이 자손 만들 때 일곱달에 남녀를 구별하고 아홉달 열달 채워 아기를 머리 끝부터 세상에 내놓으니 머리털은 길고 발등 털은 짧단다.”

traditional_fairytale8_03대별왕 소별왕 |이유정 | 21세기북스

소별왕은 두 차례 수수께끼 내기에서 이기지 못하자 이번에는 꽃피우기 내기를 제안했다.
“설운 형님, 꽃송이를 더 번성하게 피운 사람이 이승을 맡고, 시들게 한 사람은 저승을 맡으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자.”
서천꽃밭에서 가져온 꽃씨를 하나씩 나눈 뒤 꽃을 피우는데, 대별왕의 꽃은 잘 자라 번성했고, 소별왕의 꽃은 겨우 꽃봉오리가 맺히는 듯하더니 금세 시들어갔다. 소별왕은 꾀를 내어 대별왕이 깊은 잠을 자는 사이 꽃을 바꿔치기했다. 결국 속임수로 내기에서 이긴 소별왕이 이승을 맡고, 대별왕은 저승을 맡기로 했다.
대별왕은 동생에게 신신당부했다.
“설운 아우야, 네가 이승을 차지할텐데 이승에는 살인자와 역적이 많단다. 도둑도 많고, 남의 아내를 탐내는 사람도 많단다. 저승은 맑고 깨끗한 곳이다. 그러나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 법, 나는 저승을 차지하러 가니 너는 이승을 잘 다스려 살아라,”

인간세상이 혼란한 까닭

소별왕이 인간세상에 내려오니 대별왕이 말한 그대로 혼란과 무질서로 엉망이었다. 나무와 새와 짐승이 사람의 말을 하고, 귀신을 부르는 소리에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을 부르는 소리에 귀신이 대답했다. 날마다 살인과 도둑질이 끊이질 않았다. 소별왕은 감당하지 못하고 대별왕에게 하소연했다.
“설운 형님, 나에게 이승은 버거워요. 형님이 이승을 맡아주세요.”
“이제 와서 그럴 수는 없단다. 큰 질서는 내가 잡아줄 테니 네가 감당해라.”
대별왕은 보릿가루와 송홧가루 닷 말 닷 되를 빻아 마파람에 동서로 날려 보냈다. 그랬더니 나무와 새, 짐승들의 혀가 굳어 다시는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규범과 윤리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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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머리로 표현된 자그레우스 (출처: 네이버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그리스신화에도 인간이 선악을 갖게 된 사연이 나온다. 제우스와 페르세포네 사이에서 태어난 자그레우스는 순수하고 완벽한 성품을 타고났다. 제우스가 자그레우스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헤라는 질투심에 티탄 족을 사주해 자그레우스를 죽이려 했다. 티탄 족은 여러 동물로 변신하며 도망치는 자그레우스를 뒤쫓다 황소로 변신했을 때 낚아채 갈가리 찢어 먹어치웠다. 화가 난 제우스는 번개를 던쳐 티탄 족들을 태워버렸다. 자그레우스의 심장은 살아남아 훗날 세멜레가 삼켜 디오니소스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제우스는 재가 되어 버린 사랑하는 아들 자그레우스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그레우스의 재와 제우스의 눈물로 인간을 빚었다. 재 속에는 순수한 자그레우스의 영혼뿐만 아니라 잔혹한 티탄 족의 영혼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되었다.
두 이야기를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는 늘 어지럽고 범죄가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 조상들은 더 지혜롭고 공정한 대별왕 대신 속임수과 잔꾀에 능한 소별왕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된 탓이라 여겼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이 원래 선과 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탓이라고 여겼다. 우리 조상들이 그래도 인간세상을 희망적으로 본 것은 능력 있는 지도자에 의해 윤리 도덕과 사회 질서가 잡힐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능력 있는 지도자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범죄가 사라지고, 상식과 규범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너 나 할 것 없이 작은 지도자가 되어 사회 질서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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