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까치설 이야기

1월 1일 일요일 성당 미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미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노래로 성가 대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는 동요를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아이들의 질문.
“엄마, 왜 까치 설날은 어저께예요?”
역시나 앞줄에 앉은 아이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제 옆의 엄마에게 물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대. 까치들은 뭐든 먼저 아니까 설도 먼저 지내나 보지.”
아이 엄마의 ‘까치설’에 대한 재밌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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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리 설날은> 임정진 그림, 푸른숲주니어

까칠한 까치

근데 아이 엄마 말대로 까치가 울면 정말 반가운 손님이 올까? 동네 어디서고 흔히 볼 수 있는 까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로 한곳에 자리 잡으면 여간해선 둥지를 옮기지 않는다. 동네 오래된 나무 꼭대기를 잘 살펴보면 한 그루에 까치집이 한두 개씩 보일 것이다. 까치는 둥지가 낡으면 옆 동네로 이사 가는 게 아니라 그 나무에 새 집을 짓고 눌러앉는다.
까치는 텃세도 심하다. 제 영역에 낯선 침입자가 오면 아무리 맹금류라 할지라도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무차별 공격으로 쫓아낸다. 만약 까치집 나무가 있는 집이라면 까치 울음소리를 반가운 알람 소리라 여기면 된다. 까칠한 까치에게는 침입자이겠지만, 우리 집엔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는 증거이니까.
<삼국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까치가 요란스레 울어 찾아가 보니 배에 실려온 궤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서 웬 잘생긴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가 훗날 탈해이사금이다. 그 후 사람들은 까치가 울면 귀한 인물이나 사람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까치설’은 ‘작은설’

그런데 까치설은 까치가 설을 세는 날이 아니라 음력 설 전날인 섣달그믐에 지내는 ‘작은설’을 말한다. ‘작다’는 뜻을 지닌 ‘아치’라는 말이 붙어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변하여 ‘까치설’이 되었다고 한다.
설날 동요 2절은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로 시작된다. 여기서 작고 어린 동생이 입는 색동저고리를 ‘까치저고리’라고 한다.
작다는 뜻의 까치가 붙은 말 가운데 이런 지명도 있다. 서울에도 있고 지방 곳곳에도 있는 ‘까치산’은 까치들이 많이 사는 산이 아니라 작고 아담한 산을 가리킨다.

어른들께 한해 감사 인사로 묵은세배 올리는 날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보신각 타종을 흔히 ‘제야의 종소리’라고 한다. 여기서 제야는 제사를 지내는 밤이라는 뜻으로, 섣달그믐 밤을 말한다. 음력 섣달그믐 밤이면 조상들께는 한해가 끝났음을 알리는 제사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께는 한해를 보내며 감사 인사를 올린다. 이를 ‘묵은세배’, ‘그믐세배’라고 한다.

밤새 뜬 눈으로 지새는 날

섣달그믐을 또 다른 말로 ‘수세(守歲)’라고 한다. 말 그대로 다가올 새해를 지키기 위해 방이며 부엌이며 대문이며 할 것 없이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밤을 새는 일이다. 이날 집안에 불을 밝히는 까닭은 묵은 것을 태워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니 절대 잠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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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빠 어디가’ 캡처)

양괭이 피해 신발 감추는 날

섣달그믐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 또 하나 있다. 밤새 야광귀신 또는 양괭이라는 신발 훔치는 귀신이 찾아와 혹시나 내 신발을 훔쳐 가지 않는지 감시해야 한다.
양괭이는 아이처럼 자그마한 맨발 귀신이다. 섣달그믐 밤에 나타나 사람들 신발을 신어보다 제 발에 맞는 신을 찾으면 신고 달아난다. 이때 신발을 잃은 주인은 병을 앓거나 재수가 없다고 한다. 양괭이는 체구가 자그마해 어린 아이들의 신발이 꼭 맞을 수 있으니 특히 아이들 신발을 꼭꼭 잘 숨겨 놓아야 한다. 양괭이가 신발을 훔쳐가지 못하게 정신을 쏙 빼놓는 방법도 있다. 양괭이는 숫자 세기를 좋아하는데, 정작 셈에 약하다. 이날 문 앞에 말총으로 만들어 체를 걸어두면 양괭이가 촘촘한 체 구멍을 세다 새벽 닭이 울 때까지 미처 다 못 세고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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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귀신> 한병호 그림, 사파리

까치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섣달그믐의 작은설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까치설은 가족과 함께 집안 청소도 하고 묵은 일도 정리하며 한해 잘 돌봐준 데에 대한 감사 인사를 올리는 날이다. 또 밤새 불 밝히며 귀신을 쫓고 집안에 광명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날이다. 그렇게 묵은 해와 새해가 이어지며 한해의 끝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지켜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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