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웃또와 고산국과 지산국의 삼각관계 (1)

백주또와 소천국의 대식가 아들 바람웃또(바람운이라고도 한다)와 이름이 같은 일문관(日文官) 바람웃또가 있다. 일문관 바람웃또는 직책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와 달, 비와 구름 같은 날씨를 관장하며 풍운조화를 부린다. 그런데 하필 그 이름 탓인지 바람웃또는 아내를 두고도 바람을 피운 덕에 시끌벅적한 ‘사랑과 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바람웃또와 치정극에 얽힌 여인들이 바로 고산국과 지산국 자매이다. 영국의 헨리8세가 혼인 관계는 아니지만 언니 메리 불린과 정을 통해 놓고 동생 앤 불린의 미모에 반한 것처럼, 바람웃또 또한 아내 고산국의 동생인 지산국의 미모에 반해 불륜에 빠졌다.
바람난 남편을 둔 아내 하면 그리스 로마신화의 헤라를 빼놓을 수 없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바람을 피울 때마다 질투하며 철저히 상대를 응징하지만, ‘가정의 신’답게 이혼만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근 무쇠 활과 백근 무쇠 화살로 완전히 무장하고 바람난 남편과 동생을 뒤쫓는 기개 넘치는 고산국은 사이다 같은 응징을 하는 한편, 용서에 앞서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도리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그리고 재산을 나누어 갈라서며 당당하게 독립해 살아간다.

바람웃또,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다

한라산에서 솟아난 바람웃또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해와 달을 관장하는 일문관이다. 어느 날 바다 건너 강남천자국에 유람을 갔다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묵게 되었다. 그 집은 강남천자국 대신의 집으로, 주인인 대신은 바둑을 매우 좋아했다. 바람웃또는 대신과 바둑을 두면서 두 번 연거푸 이겼다. 아쉬운 대신은 한 번 더 두자고 청했는데, 세 번째 판세도 바람웃또가 유리했다.
대신이 다음 수를 생각할 동안 바람웃또는 화장실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별당에서 헤매게 되었다. 마침 별당 창가에 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빗고 있었다. 바람웃또는 선녀와도 같은 여인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대신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이 판에서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줍시다.”
바둑을 좋아하는 대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바람웃또의 승리였다. 의기양양한 바람웃또는 대신에게 소원을 말했다.
“대신의 딸과 혼인하겠습니다.”

엇갈린 사랑, 비극의 시작

바람웃또는 약속대로 대신의 딸과 혼인했다. 혼인식을 치른 첫날밤, 바람웃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부의 얼굴을 가린 너울을 걷었다. 그런데 기대하던 천하절색의 미녀가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천하박색의 추녀가 얼굴을 드러냈다.
알고 보니 바람웃또가 본 아름다운 여인은 대신의 둘째 딸이고, 혼인한 여인은 첫째 딸인 고산국이었다.
바람웃또는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고 후회했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어쩔 수 없이 고산국과 부부로 살면서도 처제에 대한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속앓이만 할 뿐이었다. 바람웃또는 아내가 차려온 밥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글공부를 핑계로 번번이 자리를 피했다.

바람웃또

(사진출처: 어플 ‘이야기 속 제주’ 카툰 캡처)

그렇게 하루하루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이러다 죽겠다 싶어 바람웃또는 처제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처제 역시 별당에서 바람웃또와 마주친 그날부터 호걸다운 풍모에 반한 터였다. 서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 건너 고향 땅 한라산으로 도망쳤다.

뒤쫓는 고산국

고산국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그러고선 곧바로 활동이 편한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천근 무쇠 활과 백근 무쇠 화살을 둘러맨 뒤 제주로 향했다. 고산국은 백리 길을 오리에 움직이는 축지법으로 금세 두 사람 뒤를 따라붙었다.
고산국이 한라산까지 바짝 뒤쫓아오자 놀란 바람웃또는 구름을 움직여 조화를 부렸다. 한라산은 곧 동서남북이 가늠이 안 되고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했다.
고산국은 보이지도 않는 길을 헤매며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죽은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살아서 백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한라산 구상나무였다. 그 죽은 나무를 뽑아 썩은 가지를 잘라내고 흙 묻은 뿌리를 털어내니 마치 닭처럼 생겼다.
“나무에 깃들어 백 년을 기다린 새야, 힘차게 울어라!”
고산국이 원래 있던 자리에 나무를 놓으며 주문을 걸었다. 나무 닭은 진짜 닭처럼 고개를 들며 날개를 흔들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콩죽처럼 짙게 깔린 안개가 닭 울음소리에 놀라 사라지고 말았다. 안개가 깨끗하게 걷히자 숨어 있던 바람웃또와 지산국의 모습이 단번에 드러났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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