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리더 : 누구도 시키지 않은 신년기획]    10년차 에디터의 인생책 #1. 서브텍스트 읽기

집은 점점 좁아지고 책은 점점 많아진다. 아무리 책을 기증하고 선물하고 버리기까지 해도 줄지 않는다. 그러다 드는 생각, 내가 정말 모든 책을 다 정리하고 단 몇 권만 가지고 있는다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 쉽게,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은 물건의 변형이라고 하겠다. 우선 모든 만화책은 다 남기고 싶지만 그러나 분명 머릿속에 이 책만큼은 남겨야 한다고 떠오르는 몇 권이 있다. 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신년 기획, 10년차 에디터가 전하는 인생책 이야기>는 내가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은 책 몇 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브텍스트 읽기

10년 동안 책을 편집하면서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또 알게 되었다. 물론 애초에 좋은 책들이기 때문에 세상에 내보내고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지만 내 기준에 좋은 책, 단 열 권으로 소박해질 내 책장에 남아 있을 책을 고른다고 했을 때 남기고 싶은 책은 “나를 그 책을 읽기 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책”이다. 『서브텍스트 읽기』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은 모두에게 최고의 책이 될 수 없는 책이고, 개인의 독서의 취향과 역사, 맥락을 제한 채로 무조건 좋은 책이 될 수 없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 왔고, 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을 어떤 식으로든 해왔고, 글을 써왔거나 앞으로 쓰고 싶은 사람, 활자 텍스트가 되었건 영상 텍스트가 되었건 파악하고 이해하고 자기 삶에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 이라면 이 책이 아마 반가울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내용에 대해서 세심하다는 말을 써야 할까, 주의깊다는 말을 써야 할까 잘 모르겠다. 『서브텍스트 읽기』는 주의깊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살피고, 상황을 보고, 관계를 맺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던 사람에게 더 잘 들리고 잘 읽히는 책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대화를 할 때 많이들 상대가 실제로 소리내어 말하는 ‘말’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할 때가 많고, 뉘앙스, 표정, 속뜻 같은 것을 구태여 헤아리지 않는다.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작가가 공들여 묘사하는 배경설명, 얼굴표정과 상황을 독자는 굳이 집중해 읽지 않는다. 이것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인물들이 하는 대화나 굵직굵직한 사건이 전부라 생각한다. 그러나 『서브텍스트 읽기』의 저자 찰스 백스터는 오히려 대화 바깥의 요소들이 말해주는 것들이 더 많다는 지적을 하는데 이것은 비단 책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서 대부분의 일들은 머릿속에 일어난다는 어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실제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상상한다. 그것들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표정과 인식하지 못하는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브텍스트가 중요한 이유다. 진짜로 누군가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핵심에 가닿고 싶다면 우리는 다르게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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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텍스트 읽기』를 읽고 난 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기분은 묘하다. 훨씬 많은 것들이 보인다. 전에는 두껍고 재미없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했던 책이 다시금 재미있어진다. 나는 출판업계 종사자 중에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말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만났는데, 그들에게는 더 이상 독서가 어떤 놀이나 휴식이 되지 못하는 탓일 거다. 물론 책을 읽는 물리적인 행위는, 눈도 시리고 책이 무거우면 팔도 아프고, 엎드려서 보면 어깨와 목도 뻐근해지므로 피곤한 일이다. 전혀 휴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독서가 가능하게 하는 어떤 정신적 세계에서의 유희는 분명 우리에게 휴식이 된다. 『서브텍스트 읽기』는 내게 독서의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게 해준 책이기도 한데, 그렇게 새롭게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읽으며 소리내어 웃는 일이 잦아졌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그게 뭐 그렇게 웃기냐며 이해 못할 눈빛을 내게 보내긴 했지만.. 내 독서의 역사에서는 가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찰스 백스터를 만난 것은.

예전에 친구들과 SMAP 광고를 몇 번씩 돌려보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냥 한번 보면 에이 이게 뭐야 할 수 있지만 두번째는 기무라에, 세번째는 나카이에.. 이런 식으로 각 멤버에 초점을 맞춰서 영상을 보고 또 보면 신기하게도 이 광고는 처음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원래도 꽃처럼 화려하고 빛나는(사심 폭발 멘트) 기무라의 손짓 몸짓, 뻣뻣한 이나가키 고로의 스텝 등.. 각 멤버의 성격과 그들의 역사를 아는 팬들이라면 더더욱. 갑자기 뭔 스맙 얘기냐 싶겠지만, 내게는 이게 가장 쉬운 예시다.
세상엔 한눈에, 한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보려고 하면, 보기 시작하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도, 책속 등장인물의 마음도, 우리 가족의 당최 알 수 없는 속도, 연인의 뾰로통한 표정 뒤의 속뜻도, 표면 아래를 보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것들이 출렁인다. 『서브텍스트 읽기』는 어떻게 보면 텍스트와 서브텍스트 속에서 보다 풍성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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