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축복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정말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너무 오래전이어서 사실 그..그렇게 기억이 잘 나는 건 아니지만 글자도 읽을 수 없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아 막막하고 답답했던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영어를 쓰는 곳이 아니면 어딘가를 갈 때마다 엄청 쫄아야 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이 파악되지 않을 때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를 모르는 게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건데 뭘 그리 괴로워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읽지 못한다는 고통스러움은 생각보다 컸다.

미세요
한국인은 이 한글을 못 읽는다죠.. ‘당기세요’와 ‘미세요’. 

 
『보고시픈 당신에게』를 보고 그 읽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신들의 나라에서 느끼고 사셨을 어르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은 인생 후반부, 뒤늦게 한글을 배우게 되신 어르신들이 쓴 글 모음집인데, 한글을 배우고 나니 이제 은행이나 식당에 가는 게 더 이상 심장 벌렁벌렁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읽혔다. 메뉴를 읽을 수 없어 식당에서 늘상 다른 사람이 시키는 것만 “같은 것”으로 따라 시켰다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일을 할 때 전화를 받으면서 메모를 남겨달라는 말을 할 때의 철렁함 등 우리가 평소에 생각지도 못하는 사소한 일상에서 이 분들은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괴로워하고 사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괴로움이 시절이 드디어 끝나 이제 간판도 읽고 메뉴도 읽고 편지도 쓰고 시도 쓰고 산문도 쓰신다.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게 즐겁고 친구들과 함께 배우는 게 마냥 행복하다 하신다. 당신들의 감정을 마침내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그 감격은 이 책 『보고시픈 당신에게』에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가득하다. 나는 문득 내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머리와 마음에 뒤엉켜있는 생각과 감정의 타래를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세상엔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말과 글을 쓴다는 건 축복이다.

보고시픈

“내 나이 50이 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한글을 한 자 한 자 배우면서 얼마나 즐겁고 좋은지 모른다.
나는 책도 한번 써보고 싶다.
우리 가족에게 자랑도 하고 싶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책을 쓰고 싶고 가족에게 자랑도 하고 싶다는 박경자 아주머니. 이 욕망은 굉장히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 소중한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우리, 열심히, 부지런히 사용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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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북스에서 나온 글쓰기 노트 『작가처럼』의 ‘작가처럼’은 프로 작가처럼 글을 잘 쓰자는 것도, 그런 사람만 글을 써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쓸 수 있는 사람이 쓰고 쓰고 싶은 사람이 쓰자는 것. 내가 아는 작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꾸준히 쓰고, 꾸밈없이 쓰고, 정직하게 쓰고, 거침없이 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쓰고 싶어진다. 친구가 필요한 날, 고독한 어느 날, 이야기상대가 필요하거나 위로가 필요한 날, 글 너머에서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글을 쓰고 읽는 이가 그런 사람들이다.

하늘나라에 먼저 보낸 보고 시픈 영감님에게 편지를 쓰고, 그를 그리워하는 것. 자식과 손주에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적으며 그들의 이후에까지 함께하기를 소망하는 것. 이 어르신들이 한 일은 바로 내가 아는 작가들이 한 일과 정확히 같다. 이제 막 글을 배운 누군가이거나, 작가지망생이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 들려주고 싶은 대상이 있는 우리가 바로 ‘작가’다. 『작가처럼』은 그러니까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동생처럼, 당신처럼, 나처럼 쓰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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